안녕하세요, 저는 기능 팀에서 송민혜, 김명주, 형지현, 김수연, 김채은, 이가은 이 6명의 멋지고 사랑스러운 분들과 함께 전시를 만들었던 이은채입니다. 아키텐 편집부 활동의 마지막 기사로 저희 팀 전시를 소개하는 글을 남길 수 있게 되어 더욱 특별한 마음입니다. 이번 기사에서는 저희 팀을 대표한 해설자가 되어 여러분을 ‘기능의 반란’ 전시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.
‘form follows function.’ 건축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이말! 저희는 이 문장에 의문을 던지며 당연히 여겨왔던 ‘기능’에 대해 고민했습니다. 설계의 전 과정을 되짚어보면, 모든 과정이 중요하겠지만 가장 초반에 설정될 ‘용도’에 관한 기준은 특히 중요한 지표를 만듭니다. 건물이 ‘어떻게’ 쓰일 것인지에 대한 답은 그 이후 모든 과정을 안내할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. 건축을 포함하는 디자인이라는 상위 개념에서 용도, 즉 기능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이 가진 영향력을 시험해보자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습니다.
기능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방법으로 ‘기능 비틀기’라는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였고, 그 대상으로는 아주 단순하고 작은 건축 요소 중 하나인 계단을 선정했습니다. 계단의 용도와 쓰임새, 즉 기능을 조사하고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‘0’이라 설정한 뒤 그곳에서 기능을 더하고 빼보는 과정에서 9개의 각기 다른 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. 각각의 계단을 만드는 것은 모두 가장 단순한 질문인 ‘왜?’에서 시작되었습니다. “왜 계단은 발로 딛어야해?“, ” 왜 계단을 거치면 어딘가로 이동하게 되는 거야?“ 와 같은 질문들은 계단의 원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.
이제 저희 기능 실험의 9가지 결과물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. 그 전에,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0을 중심으로 왼쪽이 -, 오른쪽이 +인 기다란 직선의 그래프를 한번 그려보세요! 그 긴 그래프의 중간 지점인 0 위에는 여러분이 계단을 떠올리면 그려지는 가장 평범한 계단이 놓여있습니다. 그 기본적인 계단에서 특정 기능들을 빼버려 언뜻 보면 계단이지만 사실 계단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-쪽에 놓여있습니다.
🎢그중 첫 번째는 무작위 계단입니다. 시공간 초월, 시공오류, 공간과 계단의 결합이나 층층이 올라가도 막다른 벽이 나오는 계단이죠. 🗃🗑두 번째는 포스트잇 계단과 아크릴 계단입니다. 이 둘은 세트인데요, 포스트잇 계단은 여러 겹의 종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종이를 한 장씩 떼어낼 때마다 너비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엔 밟을 수 없는 아주 얇은 계단이 되는 계단입니다. 반대로 빈 통의 아크릴 계단은 그 떼어낸 종이를 구겨 버리는 쓰레기통 역할을 하다가 점차 통이 종이로 채워지면 계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계단입니다. 🎏세 번째는 빨랫줄 계단입니다. 계단의 필수 요소는 아무래도 디딤판이죠. 그 디딤판의 방향이 바뀌어버려 발이 푹푹 빠져버리는 계단입니다. 🧵네 번째는 3D펜 계단인데요, 계단의 형태와 거의 유사하지만 한없이 가볍고 약한 선으로만 이루어진 계단입니다. 🖼다섯 번째는 창문 계단입니다. ‘출발지와 목적지가 같은 계단은 어떤 모습일까?’ 에 대한 상상을 담은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.
자, 그럼 이제 반대로 +쪽으로 이동해 0에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계단을 살펴볼까요? 🧦첫 번째는 순서계단입니다. 사실 이 계단은 사용 방식에 따라 -가 될 수도, +가 될 수도 있는 성질을 가졌습니다. 독특하게도 어떤 발부터 올라서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. 계단이 안내하는 방향의 발부터 올라서면 +가 되겠지만, 그 반대일 경우 계단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. 🎒두 번째는 가방계단입니다. 수납이 가능하고, 들고 이동하며 사용할 수 있는 계단을 상상했습니다. 🧱세 번째는 브릭계단입니다. 꼭 계단을 두발로만 올라가야할까요? 이 계단은 마치 클라이밍을 하듯 온 몸으로 벽에 박힌 물체를 집고 오르는 계단입니다. 계단 면적을 확실히 줄일 수 있으며 벽에 배치된 알록달록한 사물들은 하나의 작품으로써 기능할 것입니다. 🧘♀️네 번째는 석고 계단인데요, 명상의 공간으로 기능합니다. 안이 텅 비어있는 계단 틀에 석고를 부어놓고 시간이 지나 그게 굳었을 때 비로소 한 칸을 올라갈 수 있는 계단입니다. “나 계단이 너무 늦게 말라 지각을 해버렸지 뭐야.” 이런 대화가 오가는 상상을 했습니다. 사회가 조금 느리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죠.